맞춤법 톺아보기

헷갈리기 쉬운 우리말 맞춤법, 원리를 알면 평생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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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톺아보기 연작 10화2026.09.07

낫다 / 낳다

‘낫다’와 ‘낳다’의 차이를 알아보고, 아픈 하루를 카카오톡과 작은 방문으로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아픈 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낫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감기가 낫다’, ‘다 나으면 만나자’처럼 씁니다.

‘낳다’는 아이를 출산하거나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뜻으로

‘아이를 낳다’, ‘좋은 결과를 낳다’처럼 씁니다.

맞춤법 톺아보기 연작 10화

다 나으면

나는 화면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렸다.

계절이 하나쯤 지나 있었다.

그 무렵에는 아침부터 별것 아닌 말이 오갔다.

‘일어났어?’

‘응.’

‘밥’

‘아직.’

‘먹어’

‘너는?’

‘촬영장 가는중’

어디로 가는지,

뭘 먹었는지,

몇 시에 끝나는지.

굳이 몰라도 되는 것들을 서로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내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나 오늘 못 나갈 듯.’

답장이 바로 왔다.

‘왜’

‘감기.’

‘많이 아파?’

‘그냥 좀.’

‘열은?’

‘몰라.’

‘재봐’

‘귀찮아.’

‘재’

나는 한동안 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이서윤’

‘왜.’

‘열’

‘알았어.’

체온계를 찾아 재고 사진을 보냈다.

‘38.2’

곧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대신 카톡을 보냈다.

‘목 아파서 말하기 싫어.’

‘병원가’

‘좀 자면 괜찮아질 거야.’

‘병원’

‘박피디님 촬영이나 하세요.’

‘지금 이동중’

그리고,

‘병원 갔다오면 촬영 열심히 함’

‘왜 거래를 해.’

‘빨리가’

결국 병원에 다녀왔다.

약 봉투 사진을 찍어 보냈다.

‘갔다 옴.’

숫자 1이 거의 바로 사라졌다.

‘잘했어’

‘밥 먹고 약먹어’

‘입맛 없어.’

‘뭐 먹고싶은데’

‘없어.’

‘죽?’

‘싫어.’

‘과일?’

‘싫어.’

‘케이크?’

‘감기에 케이크를 왜 먹어.’

‘먹고싶을수도 있지’

‘안 먹고 싶어.’

‘어렵네’

나는 조금 웃었다.

점심이 지나고,

도현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잤어?’

‘응.’

‘열은’

‘37.8’

‘좀 내려갔네’

한 시간쯤 뒤에는,

‘약 먹었어?’

‘응.’

저녁에는,

‘밥은?’

‘먹었어.’

‘뭐’

‘죽.’

‘죽 싫다며’

‘먹으라며.’

‘잘했어ㅋㅋ’

그날 도현의 대화에는 유난히 물음표가 많았다.

촬영 중간중간 생긴 몇 분마다 나를 확인했던 모양이었다.

밤이 되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나 끝’

‘고생했어.’

‘좀 괜찮아?’

‘응. 많이.’

‘다행이다’

그리고 잠시 뒤,

‘푹 자면 내일은 다 낳을거야’

나는 이불 속에서 웃었다.

‘낳으면 안 되는데.’

답장이 바로 왔다.

‘뭘’

‘내가 뭘 낳아.’

한동안 숫자 1만 사라지고 답이 없었다.

그러다,

‘아’

‘나을거야’

‘네.’

‘아픈데도 그건 고쳐주네’

‘그건 너무 심했어.’

‘미안합니다’

‘누구한테.’

‘국어한테’

나는 소리 내서 웃다가 기침을 했다.

‘웃겼더니 기침 나잖아.’

‘내잘못이네’

‘네.’

잠시 뒤 도현이 물었다.

‘다 나으면 뭐 하고 싶어’

나는 잠깐 생각했다.

‘밖에 나가고 싶어.’

‘어디’

‘아무 데나.’

‘그럼 다 낳으면 아무데나 가자’

나는 이불 속에서 다시 웃었다.

‘또 낳았어.’

숫자 1은 금방 사라졌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박도현?’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몇 분에 한 번씩 열을 물어보고,

약을 먹었는지 확인하던 사람이었다.

‘뭐 해?’

한참 뒤에야 답이 왔다.

‘잠깐만’

‘왜.’

‘좀만 있어봐’

‘뭔데.’

이번에는 숫자 1만 사라졌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촬영이 끝났다더니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그러다 초인종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었다.

배달을 시킨 것도 없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문 열어’

그게 그날 카톡의 마지막이었다.

문을 열자 도현이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죽이 든 종이봉투가 있었고,

다른 손에는 약국 봉투와 이것저것 담긴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아침부터 열을 재라고 하고,

병원에 가라고 하고,

약을 먹었는지 확인하던 사람이

촬영이 끝나자 결국 집 앞까지 와 있었다.

그날 도현은 죽을 데워줬고,

약 먹을 물을 가져다줬고,

내가 춥다고 하면 보일러 온도를 올렸다가

덥다고 하면 다시 내렸다.

자기는 감기 옮으면 촬영에 큰일 난다면서

소파 끝에 멀찍이 앉아 있었다.

나는 침대에 기대 앉아 있었고,

도현은 소파에 앉아서

촬영장에서 있었던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몇 번 웃었고,

웃을 때마다 기침을 했다.

그러면 도현은 웃기지 않겠다고 해놓고

조금 뒤에 또 웃겼다.

아팠던 날인데,

이상하게 그날을 떠올리면 아팠던 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죽이 무슨 맛이었는지도,

약을 몇 시에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대신 도현이 마스크를 쓴 채

소파 저 끝에 앉아 있던 모습은 아직도 선명했다.

다 나으면 어디든 가자고 했지만,

그날의 나는 이미 충분히 좋았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같은 방에 있는 것만으로.